
Dancing Box, 춤추는 상자 춤이 어디서든 흘러나올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뮤직박스를 생각해본다. 작은 금속 핀들이 회전하는 드럼을 건드리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상자 하나가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불러낸다. 나는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춤도 이렇게 어디서든 꺼낼 수 있지 않을까.
― 개념
음악은 스마트폰 하나로 어디서든 재생된다. 그러나 춤은 여전히 특정한 공간과 맥락을 필요로 한다. 일상 속에서 춤을 즐기고 싶다는 오래된 질문이, 마침내 하나의 상상으로 모였다. 바로 춤추는 상자, 댄싱 박스다.
댄싱 박스는 안무를 생산하는 도구가 아니다. 동작 몇 개로 나의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과정, 그 과정 자체를 나는 춤이라 부른다.
내가 원할 때 춤을 불러내고, 지친 몸에 필요한 움직임을 제안하며, 지금 이 순간 나의 상태에 반응하는 무언가. 아침에 일어나 오늘의 기분을 말하면 그에 맞는 움직임을 건네주는 장치. 거창한 안무가 아니어도 좋다. 두 손을 들어 하늘을 보거나,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어깨를 풀거나—그 작은 순간들을 춤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댄싱 박스가 꿈꾸는 일상이다.
― 지금, 댄싱 박스
댄싱 박스는 현재 개념이면서 동시에 실험이다. 〈여민락〉 연작을 통해 쌓아온 움직임의 데이터화 작업, AI와 춤의 관계를 탐문한 아티스트 토크, 모션 캡처를 통해 신체를 입자로 전환하는 시도들—이 모든 작업이 댄싱 박스라는 큰 틀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
2018년 긴 호흡의 발견으로 시작해, 2020년 균형의 의미, 2021년 속도와 시간의 재해석, 그리고 2025년 데이터가 된 춤으로 이어진 이 여정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매 순간 작업에서 생겨난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여기까지 온 것이다.
― 협업이라는 형식
댄싱 박스 안에서는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무용가, 안무가, 데이터 전문가, 의학 연구자, 그리고 AI까지.
이는 단순한 협업의 이름표가 아니다. 댄싱 박스라는 공간이 서로 다른 존재들의 춤을 불러내고, 그 만남으로부터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있고, 기술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있고,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콜라보레이션도 있을 것이다.
― 먼 미래를 위한 현재의 상상
언젠가 댄싱 박스는 요술 램프가 될 것이다. 오늘 몸이 꿀꿀하다고 말하면 연기처럼 나타나 내 공간 안에서 움직임을 펼쳐 보이는 무언가. 지금으로서는 스크린을 통해서만 구현되지만, 2040년쯤의 어느 날, 입자들이 허공에서 형상을 이루고 춤이 실제 공간 속으로 걸어 나오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것은 공상이지만 결코 무용한 공상이 아니다. 예술가의 상상은 언제나 기술보다 조금 앞서 서 있었고, 기술은 그 상상에 응답하며 함께 진화해왔다. AI가 방대한 움직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에게 필요한 춤을 꺼내주는 날, 댄싱 박스는 비로소 완성된다. 그 완성을 향해, 지금 이 모든 작업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다.
2026. 05.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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