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의 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Arko Arts Theatre
제26회 한국무용제전에 참가한 작품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속의 한국문화유산을 춤추다” 는 주제 의도에 맞춰 2009년 제4회 무형문화유산 보호정부간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처용무>를 처용설화 이야기에 기반하여 솔로 춤으로 표현하였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이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處容)이 불렸다는 노래이다. 노래 말의 여유처럼 아내와 동침한 역신을 감동시키고 처용의 형상조차 피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처용이 춘 춤은 분명 신의 춤이었을 것이다. 본 작품은 처용설화에서 보여 지는 벽사로서의 처용이 아닌,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관조하려고 애쓰며 신의 마음으로 춤추었을 인간 처용을 상상하고, 오늘을 사는 한 여인의 ‘처용의 춤’ 따라 추기를 무대화한 것이다. – 작품의도, 프로그램 북 중에서
주최 한국공연예술센터, 한국무용연구회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관광부
일시 2012.04.05 / 04.06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안무 및 출연 김효진
음악 운수영
의상 이효수
영상연출 김효진
영상제작 YMAP
예술감독 김형수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 처용무 : http://www.unesco.or.kr 발췌>
처용무는 5명이 각각 얼굴에는 처용의 탈을 쓰고,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춤을 춘다. 통일신라에서 고려 후기까지는 한 사람이 춤을 추었으나, 조선 세종(재위 1418-1450)매에 이르러 자금과 같은 다섯 사람으로 구성되었고, 성종(재위1469-1494)때에는 더욱 발전하여 궁중의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노래의 가사나 음악을 바꾸어가면서 전송되어 왔다. 처용은 통일신라 헌강왕(재위 875~886)때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로써 아내를 범하려면 역산(전염병을 옮기는 신)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어서 물리쳤다고 한다. 이후 처용의 모습을 문에 새겨두면 홍역이나 다른 병마를 쫓을 수 있다는 설화가 내려온다. 처용무는 2009년 9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4차 무형문화유산 보호정부간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